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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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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 황정순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 황정순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꺼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 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쭈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 시킬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 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 할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놓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 할거야 이때 나직이 모짜르트를 올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
태백 가는 길 - 황정순 태백 가는 길 ― 황정순 자꾸 닥쳐 와 말꼬리 자르는 터널손전화가 여러 번 기절하다 일어선다 생도 저렇게 캄캄할 수 있어 닫히고 빠져나오기를 거듭하다 산나리꽃 환한 벽촌 거뜬히 올라오기도 할 것이다 증산역, 상하행이 교차한다 엇갈리는 게 생이다 저릿하게 관통하는 고한-사북 녹슨 화차들 갱목에 걸려 깜깜히 저물고 있다 무너진 갱 속처럼 알 수 없는 날들이나 비탈 부신 저 은사시숲같이 반짝이는 날 있어 방부제처럼 검은 곰팡이 견디는 것이리라 첩첩, 수차례 재를 넘는다 넘어 참꽃물 든 한 여자 만나러 간다 앓고 나 부스럼도 나지 않을 면역의 땅 거기 아직 햇옥수수 같은 유년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여기쯤이다 시름시름 폐광 된 생 고쳐 눌러앉을 한 뙈기 화전밭 같은 여자, 그 여자네 집 날마다 푸른 대문 열어 ..